주열이 차에 올라탄다. 간만에 정시에 하는 퇴근이었다. 근처에 차를 주차해둔 모양인지, 열의 앞을 지나가던 또 다른 검사가 그를 발견하고 목례했다. 두 기수 아래 후배는 주열의 바로 건넌방을 사무실로 쓰게 된 것을 인연으로 지검 내에서 이상스레 그와 접점이 잦은 사람 중 하나였다. 오늘 점심시간에도 휴게실에서 마주쳐 가볍게 인사를 나눴던 것이 기억난다. 주...
악의 멸종이란 무엇인가. 악은 무엇으로 멸종하며 어떻게 멸종하고 그것이 멸종한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악의 종언이란 무엇인가. 추상으로 살아가는 것에게 유언을 남길만한 힘이 있는가. 윤주호는 다 식은 몸을 멀거니 응시한다. 기도를 끝내고 나면 기만을 닮은 공백만이 남았다. 악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길게 선을 그어 그 왼쪽은 선 그 오른쪽은 악이라고 단정지을...
아주 어릴 적에는 제가 동생을 키워야 한단 사명감에 살았던 것 같다.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나서는 저들을 방치한 부모를 원망했고 조금 더 크고나서 부모님이 저희 남매를 성당 앞에 두고 떠났을 때는 세상이 무너진 줄로만 알았다. 그 때가 윤주호는 열여섯 그의 동생은 열하나일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이 일련의 역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면, 윤주호가 살...
차갑게 늘어진 것을 바라본다. 시신은 윤주호에게 있어 역한 피냄새와 함께 제법 익숙한 것 중 하나였다. 천장에 매달린 어린 여자아이가 울었다. 루치오야 내가 너와 너의 가족을 사랑하니 너의 곁에는 영영 내가 있으리라 나는 머리 일곱 개의 짐승이요 열 개 뿔의 아이라 루치오야, 루치오야! 여자이기도 하며 남자이기도 하고 노인이기도 하며 아이이기도 한 것이 귓...
윤주호의 삶에 있어 가장 어이없고 다정했던 해를 고르자면 이천구 년에서 이천십 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일 것이다. 십 년 무렵의 윤주호는 집으로 돌아갈 이유도 딱히 없어 일과 일 사이에서 일주일을 넘도록 성당의 기숙사에서 숙식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변의 징조를 알리기라도 하듯 그 날 아침은 유난히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일찍 일어나도 동 트기 전 ...
구원이란 본디 그런 것이었다. 윤주호는 아주 오래된 것들을 기억해낸다. 그는 워낙에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지나간 것을 추억하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과거의 벽면에 기록한 많은 문장이 쌓이고 쌓여 그의 일부가 되었다. 윤주호라는 인간을 반으로 갈라 단면의 나이테를 세어본다면 그의 인생을 읽어낼 수 있을 터이다. 윤주호는 그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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